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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시베리아 무릇이 전하는 봄 소식




시베리아 무릇은 러시아 시베리아가 원산인 나리과 식물이다. 추운 지역이 원산지인 식물답게,
키도 작아서 다 커봐야 15cm 남짓 키밖에 안되며, 뿌리는 알뿌리로 겨울을 나는 자그마한 꽃이다.

시베리아 무릇을 처음 만난건 원예용으로 식재한 식물원의 꽃밭에서였다.

겨울내 꽁꽁얼었던 땅이, 따사로운 햇살에 조금씩 녹아드는 무렵...
복수초가 한바탕 꽃잔치를 벌리는 화려한 틈바구니속에서,
식재된 지 1년도 안된 작디 작은 시베리아 무릇들을 만났다.

복수초의 화려한 노란 꽃 잔치가 저 뒤편에 펼쳐져는 와중에,
이제 갓 올라와 피어난 시베리아 무릇 꽃송이들이 고개를 쳐들지도 못하고 땅을 향해있는 모습에서
부끄러운 듯한, 수줍은 듯한 어린 아씨들의 모습을 떠올렸었다.

길가에 피어나는 제비꽃마냥, 가냘픈 줄기 끝에 맺혀있는 보라 빛 꽃송이들...

제비꽃은 작지만 군락을 이루면서 피기 때문에, 해맑은 어린꼬마들의 모습이 연상되곤하는데,
여러모로 제비꽃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시베리아 무릇'이긴해도,
제비꽃과는 다르게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아씨가 연상되는 이 꽃의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참을 바라만 보다 그 느낌을 살려보기로 마음을 먹고 카메라를 꺼냈다.

수줍은 듯한 이 꽃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비되는 분위기의 화려한 복수초 군락이 제격이었고,
복수초 군락을 배경에 넣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카메라를 지면에 닿을 만큼 낮추어야만 했다.

나란히 줄지어 이쁘게 피어있는 시베리아 무릇 몇 송이를 골라 프레임을 구성해 본다.
뒷 배경을 부드럽게 담기 위해, 조리개를 활짝 열었다.
최대 개방에서 화질이 떨어지는 것을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화질을 손해보더라도 느낌의 표현을 우선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수초의 화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복수초에 햇빛이 닿는 때를 기다렸다.
덕분에 사진 속 복수초의 노란 빛이 유난히 화사해 보인다.

대신, 시베리아 무릇에는 햇빛이 닿지 않아야 했다.
시베리아 무릇의 보라색 꽃에 햇빛이 닿으면, 보라색이 하얗게 떠버리는 까닭에
내가 느꼈던 수줍은 듯한 느낌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름이 흘러 햇빛이 적당히 뿌려지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리다 적당히 뿌려지는 햇빛을 만났다.
그렇게 담은 사진속에는 시베리아 무릇이 수줍은 듯 서있었지만,
허전한 느낌이 가시지가 않았다.

가끔 날아와 이 꽃 저 꽃에 앉아 꿀을 모으던 꿀벌을 또 기다려본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렇게 내가 느꼈던 느낌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님이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어린 아씨들의 모습'을 연상했다면 과욕일까?


글/사진 by 쑤굴(http://goodphot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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